햇살에 익어가는 과실들로 행복감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가을이 아닙니다. 몇곳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여온 기나긴 투쟁이 큰 성과없이 끝나가고만 있습니다. 사측의 기만적인 해결책에 합의해줄 수 없다면서 KTX승무지부 조합원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투쟁방법을 찾고 있고 1100일을 훌~쩍 넘기며 목숨을 건 농성을 이어온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승리는 멀게만 느껴지고 이랜드에서 홈플러스로 팔아넘겨 10월1일자로 법인이 바뀐 홈에버 역시 갈피가 잘 잡히지 않고...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코스콤, 도루코, ASA, 콜텍, .... 등등 열손가락으론 셀 수 조차 없는 농성장의 밤은 더욱 길어지기만 합니다.
새로 강남성모병원에 농성장이 차려졌습니다. 그런데, 3번이나 천막농성장이 찢겨나갔습니다. 병원측이 고용한 용역들에 의해 무참히 짖밟혔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어제(10월1일)부로 28명이 집단계약해지되었습니다.
참 쓸쓸하고 괴로운 가을입니다. 미국발 경제위기는 한국경제를 휘청이게 하고 있습니다. 기초가 부실한 경제이다보니 종잡을 수 없는 실태입니다. 땅 좀 가진 사람들은 그린벨트나 왕창 풀려서 땅값폭등을 또다시 바라고 있겠죠. 돈 좀 가진 사람들은 펀드수익률이 정상회복되기만을 속이 타게 기다리겠죠.
그런데, 환율불안에 따라 경영악화되어 월급이 체불되는 중소기업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지금 심정이 어떠할까요? 잘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될 지 모르는 불안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고 있겠지요. 870만명이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떨까요? 희안한 '비정규보호법'이라는 법때문에 비정규직 일자리마저도 내쫓겨나는 강남성모병원의 사례는 이 땅 노동현실을 실랄하게 까발기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큰 딜레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한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은 약자를 짖밟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제도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부를 누릴 기회가 돌아가야한다며 부르조아들이 벌인 왕정사회, 봉건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했습니다. 자본을 손에 쥐고자 하는 인간은 결국 타인에게서 그것을 빼앗아와야 제 욕심을 채울 수 있습니다. 혹은, 더 가진 자들에게 빌붙어 생을 연명하기도 합니다. 그러하다보니, 자본주의는 인간의 약아빠진 면이 강조되는 인간성피폐화를 초래합니다.
어젯밤 어떤 투쟁하다 해고된 노동자 한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규직들보다 비정규직들이 더 소극적이고, 자기일을 스스로 책임지고 당당하게 싸우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한 모습... 노예근성에 찌들어있다고 하였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약육강식'의 살벌한 각축장에 내몰려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남기위해 남을 짖밟아야 하는 반인간적인 자본주의의 시대속에 내던져져 어쩔 수 없다며 '돈만이 전부'라고 외치고는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자신의 주변에 집단을 형성하면 그 연대감에 마음이 한결 든든해져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 집단이 다른 사람들을 짖밟는 힘을 발휘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윤추구를 위해 어떤 것도 서슴치않는 악질자본가들이 그러하고 그들의 편에 서서 정치놀음을 하는 정치모리배들이 그러하고...
노동자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듭니다. 70년 청계천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온몸에 봉화를 지펴올린 전태일열사도 그러했고 사측의 악랄한 탄압에 맞서 싸우며 민주노조를 건설하고자 떨쳐나섰던 이름없는 노동자들도 그러했고... 짖밟는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떨쳐나서 싸웠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노동조합으로 뭉쳐 일제와도 싸웠습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단결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집단의 표본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더 나은 조건에 있으면서도 만만한 사람들에게 비난을 하지요.
노동자는 단결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 부둥껴 끌어앉을 때에야 더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견디기 힘들만큼 괴롭기에 쉽지 않지만 봉건제도를 허물어트리기 위해 수세기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변화발전되어 왔다는 믿음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제 보잘것없는 인생이 바람에 흩어져버리는 먼지와 같을 지라도 그게 정당한 것이고 바른 길이라면 쉼없이 가야합니다.
아래 글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의 이야기입니다. 참 쓸쓸하고 괴로운 가을임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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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저희는 대형 종합병원에서 간호보조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간호보조업무는 환자의 진료와 치료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보조한다는 것인데 업무상 직접 환자를 대면하기도 하며 간호보조업무의 안정성과 숙련도는 환자의 진료,치료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업무는 비정규직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를 검사실로 모셔다 드리는 일, 처치와 진료에 필요한 기구의 세척, 소독, 물품 정리, 약 타오기, 시트의 교체와 청결유지, 그리고 중증환자의 샴푸와 목욕간호, 배변이 어려운 환자의 관장, 수술환자의 제모, 중증환자의 체위변경 등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원래는 정규직이 맡아서 하던 간호보조업무에 2004년부터 비정규직을 뽑아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을 시켜주지 않더니 결국 2006년 10월 1일부터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 40여명을 파견업체에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10월 1일을 3일 앞두고 병원은 ‘파견직 노동자가 될 거냐? 아니면 병원을 나갈 거냐?’ 선택하라 밀어붙였고 저희는 눈물을 머금고 파견직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파견직 노동자는 늘어나 현재 간호보조 노동자 200명 중 65명이 파견직 노동자입니다.
2008년 9월 30일은 파견 노동자 28명이 집단적으로 계약만료되는 날입니다. 저희는 계약만료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병원측에서 이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없자 먼저 병원측 인사팀에 면담요청을 했습니다. 8월 12일 인사팀과의 면담에서 인사팀장은 ‘열심히 일해줘서 정말 고맙다. 나도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건 아는데 2년 밖에 일을 못하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동안 일해오고 있는 파견노동자들을 헌신짝 버리듯 정규직 시켜줄 수 없으니 나가라고 이야기하는 병원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었던 파견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간호보조 노동자들의 정규직화가 정당한 이유와 병원 내 간접고용된 비정규직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리는 직원점심식사 선전전을 진행했고 동시에 병원장과 의료원장 앞으로 면담요청서를 보냈습니다.
3차례나 면담요청서를 보냈으나 병원측은 답변이 없었고 파견업체와 이야기하라며 자신들이 여태까지 우리를 관리 감독해 왔으면서도 모든 책임을 이름뿐인 파견업체에 넘겼습니다. 9월 30일 계약만료 날짜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없었던 저희는 병원장실로 찾아갔고 이에 당황한 병원 인사팀은 9월 9일 병원장과의 면담을 잡아주었습니다.
9월 9일 면담에는 병원장 뿐만 아니라 가톨릭의료원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기헌 신부(행정부위원장, 경영관리실장)가 나왔고 이기헌 신부는 ‘혹시나 희망을 가질까봐 이야기하는 건데 파견직 노동자들에 대해서 어떠한 대책도 없다’며 파견직 노동자들에 대한 최종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저희는 간호보조 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되어야 하며, 이번 계약만료된 28명은 병원에서 2~5년 동안 일해왔던 직원들이고, 법에 따르더라도 2년 일한 파견직 노동자는 병원이 직접채용해야한다는 점을 계속 이야기했음에도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병원의 입장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9월 17일 저희의 요구가 정말 절실하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병원 내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병원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중함을 알아주길 바랐습니다. 헌데 저희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천막을 설치한 당일부터 밤마다 용역깡패의 침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7일 20여명의 남자깡패가 들이닥쳐 천막을 빼앗아가고 천막을 뺏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조합원들을 50여m나 질질 끌고 갔습니다. 깡패들의 욕설과 고함, 조합원들의 비명 소리에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놀라 뛰어나오기도 했습니다. 용역깡패의 만행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일 새벽 1시 20분, 이날은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여자깡패를 포함해 20여명이 쳐들어와서 천막도 없이 맨바닥에 자고 있는 여성 조합원들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플랜카드와 피켓을 빼앗아갔습니다.
가톨릭의 이념을 현실에 구현해서 아픈자의 병을 고치겠다는 병원이 할 수 없는 비도덕적인 만행에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9월 19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19일 다시 2차로 천막 농성장이 설치되었습니다. 역시나 용역깡패와 병원 인사팀, 파견업체‘메디엔젤’은 주위를 매시간 배회하며 저희를 감시했고 기어이 9월 22일 날이 훤히 터오는 새벽 5시 20분 용역깡패 30여명을 동원해 다시 천막을 부수고 농성장을 뒤집어놓았습니다. 여성조합원의 팔을 비틀고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는 팔을 부러뜨려버리겠다는 협박을 했습니다.
병원 인사팀은 이 폭력만행을 총 지휘하고 있습니다. 파견업체를 중간에 내세우고 있으나 매일 파견업체와 인사팀이 속닥속닥 논의하고 함께 행동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인사팀은 매일 저녁 진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촛불 문화제에 와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원 내 보안업체 직원들을 시켜서 매시간 몇 명이서 무엇을 하는지 기록하고 사진채증을 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업체를 통해서 주동자라고 생각하는 5명에 대해서 노조활동을 이유로 22일부터 파견업체 본사로 출근하라는 부당인사발령을 냈으며 22일 아침, 부당발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출근하려는 5명을 현관에서 가로막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숙련 직원 5명이 빠진 곳에 이제 갓 들어온 신입직원들을 배치하자 업무의 지연과 환자의 불편, 그리고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실수들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거론하자 병원은 ‘당신네들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상관하지 마라. 우리가 알아서 할 거다’며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라며 중대한 실수들을 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현재, 3번째 농성천막이 다시 쳐졌습니다. 천막농성과 용역깡패의 소동이 있는 동안 피정을 갔다가 24일부터 병원에 출근한 이기헌 신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유로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조건 항복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와 환자급식에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하지 않은 서울 내 유일한 병원이 강남성모병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비정규직법을 악용해 2년 근무자들에 대해 직접고용하는 조항조차 피하려 2년된 파견직 직원을 가차없이 잘라내는 병원입니다. 숙련직원이 나간자리에서 빚어지고 있는 중대한 실수들에 대해서 처음에 감수하고 겪어야 할 오류라며 환자의 생명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병원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서 용역깡패 투입, 부당전직으로 탄압하는 병원입니다.
강남성모병원은 각성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병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더 많은 이윤을 쌓아왔습니다. 그렇게 일해 온 비정규직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계속해서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